본격적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이상으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프롤로그(라고 부르는 user 첫 응답)에 공을 굉장히 많이 들였다. 특히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캐릭터와 써내려갈 이야기의 흐름이나 주제가 정해져있었기 때문에, 첫 문장을 신중하게 고르곤 했었다. 그래서 이후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워버린 채팅창이나 굳이 로그로 남기지 않은 내용이더라도 프롤로그들만은 아까운 경우가 많았다.
본격적인 풀 로그는 포스타입으로 옮겨가서 남겨두었지만, 그래도 프롤로그 조각들은 티스토리에 백업을 해두고 있었던지라. 오랜만에 댓글 달겠다고 로그인한 김에 꺼내보는 그 동안의 프롤로그 모음집!
#운자환
설정: 단씨 가문의 호족 여성, 어렸을 때 부터 단리우의 지도 아래 명휘각에서 자랐으며 현재는 단리우의 보조
이어가려던 이야기: 일할 때는 단리우의 소녀 버전, 끝나면 자환의 자유분방한 술친구. 프롤로그는 첫 만남 뿐이었고, 이후에는 자환과 즐겁게 술 마시고 노는 사이인 현재로 옮겨갔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 술김에 실수로 밤*-_-*을 보내고 묘한 사이가 되는 이야기.
그가 들어온 곳은 서고가 아닌, 나의 틈이자 내 생이었다.
월하궁 깊숙한 곳의 창 하나 없는 서고에는 어느새, 그리고 언제나처럼 나만 남아 있었다. 내 손끝에 걸리는 것들은 단순한 활자들이 아니었다. 수장님이 지시했던 문장 하나부터 그의 부관이기도 한 단리우 숙부님이 남긴 꼼꼼한 각주 하나까지—모든 글자에 그날의 무게가 스며 있었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모두 과거가 된다. 그 하루치의 기록을 정리하는 일은 늘 밤까지 이어졌고, 나는 익숙하게 촛불의 심지를 손끝으로 다듬었다.
서고 안은 언제나 정적이 흘렀다. 붓이 종이를 긋는 소리, 먹이 번지는 소리, 종이가 한 장 넘어가는 소리.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박자는 고요하고 단정했다. 그래서였을까, 들려오는 낯선 소리들에 귀는 가장 먼저 반응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 바람이 밀고 들어오는 소리. 그리고… 신발 밑창이 마룻바닥을 조용히 누르는 발소리까지.
여우귀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시선은 저절로 소리의 방향으로 향했다.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만."
그 시간에 나를 찾아올 이는 드물었다. 수장님은 이 시간에 서고까지 발걸음을 옮기실 분이 아니고, 리우 숙부님은 분명 명휘각에 계셔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니 지금 문을 연 이는 '나'를 찾아온 이가 아니라, 단지 '서고'를 찾아 들어온 자였다.
하지만 이 서고는 누구든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고, 이곳에 있는 문서들은 그저 글자라 불릴 수 없는 것들이었다. 정적 속에 숨겨진 나라의 중심이었고, 어떤 이는 목숨보다 무거운 비밀을 글로 남긴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촛불 너머로 시선이 마주한 곳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 밤을 닮은 눈썹, 그리고 낯설 만큼 선명한 붉은 눈동자. 그 시선은 낯선 듯 익숙했고, 어딘가 제멋대로였으며, 그럼에도 뚜렷했다.
그가 이 문을 열기 전까지, 나는 서고의 정적 속에서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 침입자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애쉬
설정: 헥스 챗에서 처음 시도했던 '락타리온의 괴도'이자 양심. 액션 장면들을 위해 오랜만에 3인칭을 다시 잡았다.
이어가려던 이야기: 대가 없이 움직이는 유일한 사이이자 애쉬의 대척점이기도 한 위치. 끝까지 이어가지 않은 이유는 회사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고, 그 사건에서 현타가 심하게 와서 의적따위 때려침 (...) 다만 여기서 나온 '애쉬와 소꿉친구 사이'라는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틀어서 이후 애쉬와 리체의 이야기인 메르헨이 되었다.
자유라는 이름의 적절한 혼란을 만끽할 수 있는 자들은 언제나 가진 자들이었다. 힘이든, 권력이든, 혹은 재산이든. 그 중 어느 하나조차 가지지 못한 이들은, 빼앗기고 잊히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래도 어딘가에 기대어볼 수 있는 자들은 비밀 상점의 문을 두드리며 락타리온의 진짜 지배자, 애쉬를 찾았지만—그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달이 뜨지 않는 밤에 락타리온 남부의 뒷골목으로 향했다.
그날 밤에도, 그곳에는 '그 존재'가 있었다. 어떤 이는 그를 전설이라 불렀고, 어떤 이는 재앙이라 했으며, 또 어떤 이는 양심이라 불렀다. 억울하게 빼앗긴 것이 있다면 반드시 되찾아주지만, 그 존재를 움직이게 하려면 먼저 스스로를 납득시켜야 했다. 자신의 억울함을, 그리고 그것의 정당함을. 이름조차 밝힌 적 없는 그 존재는, 어느샌가 '제로 아워'—개시의 시간에서 따온 이름으로, '제로'라 불리고 있었다.
‘제로’는 오늘도 다시 한 번, 어둠 속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은빛 권총이 별빛을 머금는 순간, 무소음의 발걸음은 능숙하게 락타리온의 지붕 위를 내달렸다. 몇 채의 건물과 담장을 가볍게 넘으며, 검은 복면 아래의 숨결은 점차 고요해졌다.
복면 위로 드러난 장밋빛 눈동자가 천천히 재력가의 방 안을 훑었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자, 제로는 곧장 금고 앞으로 다가섰다. 망설임 없는, 하지만 조심스러운 손길로 금고를 열고 그 안의 보석들 중 단 하나—장미 모양의 낡은 펜던트 하나를 꺼냈다. 중심에 박힌 루비의 반짝임은 몹시도 선명했다. 목걸이를 품에 넣은 제로는 조용히 처음 들어온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이미 바깥은 사람들로 포위되어 있었다. 피식 웃은 제로는 검은 장갑 낀 두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한 손은 은빛 권총을 들어 가장 앞선 자를 겨누고, 다른 손은 허공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리고 그 순간—시간이 멈췄다.
단 1분. 베어낸 틈 사이로, 제로는 흔들림 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뒤늦게 터진 아우성은 금세 멀어졌고, 멈추지 않은 발걸음은 곧 락타리온의 빈민가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반지하방의 문을 열고 들어선 제로는, 자신을 기다리던 소년에게 목걸이를 내밀었다.
“…루이스 페이.”
복면 아래에서 새어나온 목소리는, 긴 머리카락과 작은 체구가 말해주듯, 20대 초반의 여성의 것이었다. 소년 옆에는 더욱 어린 남자아이가 떨고 있었다.
“엄마 유품이라고 했지. …똑바로 간수해. 또 빼앗기면, 두 번은 못 찾아줘.”
소년의 인사를 기다릴 틈도 없이, 제로는 곧장 몸을 돌려 조용히 문을 나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웨이드
설정: 제작자님의 기본 설정 + 이전에 웨이드는 노르벤 가의 약혼식 절차까지 파볼 정도로 끝까지 갔지만, 이번 기회에 1인칭을 써보고 싶었다.
이어가려던 이야기: ...는 아마 그대로 이어가지 않았을까. 웨이드도 다음 이야기로 고민 중인게 있어서, 조만간 다시 쓸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성인식 무도회 장면이 아닌, 다른 장면부터 출발할 확률이 좀 높다? 무도회에서는 웨이드랑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로잘린이 쫓아다녀서 뭘 할 수가 없어...
모든 것이 불길에 삼켜진 세상 속에서, 내게 남은 것은 이름뿐이었다.
리시에트 에리슨. 한때 에리슨 백작가의 사랑받는 막내딸이었던 그 이름은, 이제 노르벤 후작가의 피후견인으로 불리는 이름이 되었다. 잿더미가 된 저택과 함께 나의 어린 시절도 사라졌고, 황폐해진 영지 에딜레아를 뒤로한 채 나는 이곳에서 성장했다.
열여덟 살. 나를 마지막으로 품에 안았던 워렌 오빠의 나이이자, 나를 발견하고 손을 내밀었던 웨이드의 나이였다. 그리고, 오늘.... 여덟 살의 나이로 노르벤 후작가에 들어와 드디어 성인이 된 나의 나이이기도 했다.
“…생애 한 번뿐인 성년식이니, 오라버니를 찾아와야죠.”
그가 문득 시선을 들었다. 나는 가늘게 남은 담배 끝의 불씨를 바라보며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그에게서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서자, 불꽃을 향하던 시선이 내게로 옮겨졌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스쳤다. 하지만 이내, 익숙한 시선이 나를 내려다보는 순간에 흔들리던 감정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언제나 그래왔듯.
“인사는 다 했고…”
나는 말을 잇다가 멈칫했다. 예법상 여자가 먼저 남자에게 춤을 청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일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규칙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내 첫 춤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내 춤의 첫 상대는 웨이드 노르벤이어야만 했다.
#단리우
설정: 곧 머리를 올려야 하는 아기 기녀 아린. 당시 단리우 챗이 처음 나왔던 때였던지라 탐방용으로 3인칭을 선택했었다.
이어가려던 이야기: 리우가 아린의 꽃잠 경매에 뛰어들게 하고 싶었으나 시 쓴다는 설정 때문에 리우가 자꾸 아린을 키우려고만 해서 (...) 첫 시도를 교훈삼아 아예 처음부터 미묘한 관계로 밀어넣어주었던 것이 이후 리우와 이서의 환생 이야기가 되었다.
운명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당연해졌다. 아린이 기억하는 모든 순간 속에서, 그녀는 이미 기녀가 될 아이였다. 홍화루에서 태어나 자란 소녀에게 선택이란 없었다. 강물이 흘러가듯, 꽃이 피어나듯 그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백 살이 되어 성인의 모습을 갖추면서, 본격적으로 기예를 익히기 시작했다. 한 번 보고 들은 것을 쉽게 잊지 않는 그녀의 능력은 탁월한 재능이 되었다. 봄날의 설렘이 맺힌 손끝이 거문고의 현을 눌렀고, 여름의 푸르름이 얹힌 발끝이 춤사위를 이어나갔다. 가을의 고즈넉함을 담은 붓이 종이 위를 스쳤고, 찰나의 순간을 담아 읊조리는 시는 깊고도 검은 겨울밤을 살랐다. 아린의 이름은 점차 홍화루 안에서 작은 소문이 되어 그녀와 함께 자라났다. 그리고 소문은 담장을 넘어 홍화루 바깥으로도 가끔 흘러나갔다.
시간이 흘렀고, 계절이 지나가면서 쌓인 시간만큼 아린도 봉오리를 맺어갔다. 그리고 이제 곧 피어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견습 기녀로서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았다. 아린이 홍화루에서 보낼 수 있는 ‘소녀’로서의 시간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꽃잠은 부부가 처음으로 함께 맞이하는 밤이라 했다. 그것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하나의 인연을 맺는 신비로운 순간이라 했다. 하지만 기녀에게 주어진 꽃잠은 다소 달랐다. 단 한 번의 밤이 앞으로 그녀의 이름이 가질 의미와 걷게 될 길을 정했다. 그리고 그 밤의 댓가는 그녀가 받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때로는 거액의 금화가, 때로는 명망 높은 이의 한마디 약속이, 혹은 그보다 더한 무언가가 그녀의 미래를 쥐었다.
그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홍화루에서 자라나며 익히 보아온 그 순간이 자신의 것으로 눈 앞에 다가오자,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불안이 서늘하게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상대가 나쁘지 않기를. 본격적으로 펼쳐질 운명이 너무 가혹하지 않기를. 꽃잎을 하나씩 뜯으며 아린은 속삭였다.
"나는 괜찮을까, 아니면 괜찮지 않을까."
한 장, 한 장. 붉은 꽃잎이 그녀의 손끝을 떠났다. 소리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꽃잎에 운명의 무게가 얹혔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꽃잎이 모두 떨어지기도 전에, 운명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온디로스 (시즌 1)
설정: 기본 설정 중 '남장'이 있던 설정 그대로.
이어가려던 이야기: 이때 온디로스를 처음으로 1인칭으로 파보려다가 많이 실패했다; 온디로스 1인칭은 지금도 좀 고민이 많은데, 해보면 너무 재밌을 것 같고. 현재는 온디 시즌 2에서 계속해서 1인칭 문체를 조절하면서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보는 중.
황혼에서의 규칙은 간단했다. 1. 의뢰를 성공할 것. 2. 동료를 배신하지 않을 것. 3. 그리고... 내가 여자라는 것을 들키지 않을 것.
황혼의 대장인 온디로스 실바레인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 나는 덕분에 한달 내내 그에게 쓰다듬을 받는 중이었다.
"아, 대장, 저 땀 있는대로 흘렸다고요. 쓰다듬으시는 것 까지는 뭐라 안 하겠지만, 지금은 좀..."
어쩐지 민망함에 목소리가 작아졌다. 있는 힘껏 볼에 바람을 불어넣어보고 발끈해봤자 그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에게 부루퉁한 표정을 지어버리고야 말았다. 황혼 생활 한 달차, 치유사로서의 일은 원래 익숙했고, 떠돌이 생활도 이제는 괜찮지만 이렇게 그에게 귀여움을 받는 것은 정말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나야?
#레이븐
설정: 레이븐 시점의 1인칭 챗에서 완전 섹시한 언니를 써보고 싶었다!
이어가려던 이야기: 무려 레이븐의 파트너를 1인칭으로 써보려고 시도했었다. 애쉬와는 비교가 안 되는 날것의 집착이어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이 때 서버가 많이 이상했는지 자꾸 망령만 나와서 (...) 너 나한테 집착하는거야 아니면 망령한테 집착하는거야 솔직히 말해라 레이븐
영원한 건 없었다. 그나마 오래 남는 것을 고르라면, 열기보다는 냉기였다. 이곳이 이름부터가 천국의 반대, 언헤븐이니까.
나는 맡았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망령에게 서리 까마귀의 정보를 넘긴 배신자는, 그 대가로 사랑하는 연인의 목숨을 살려달라는 조건을 받아냈다고 했다. 한때는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던 사람이었지만, 총알을 박아넣을 때 망설임은 없었다. 머리에 권총을 겨누는 동작은 평소보다 더 빨랐다. 내가 거의 다 잊었던 과거를 그가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흔하디흔한 이야기였다. 한때 사랑을 말하던 입술로 내 정보를 흘린 사람. 이제는 '연인'이라는 말조차 어디 깊은 곳에 묻어버리고 싶은 과거였다. 그 덕에 한때는 정말로 죽을 뻔했고, 겨우 살아남고 나서야 결심했다. 다시는 어떤 것이든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그 기억을 곱씹으며 돌아온 카라스 1층 술집은, 여전히 적당히 붐비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몇몇 시선이 내게 쏠렸다.
"...다녀왔습니다."
늘 그렇듯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보스, 레이븐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배신자는 처단되었고, 정보 누출은 거기서 끝이었다는 것을 그 한마디로 전했다.
카운터 앞 의자에 미끄러지듯 몸을 맡겼다. 제프가 시선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기분이 별로라서요. 아무거나, 한 잔 부탁할게요."
무심코 머리카락을 넘기려다 장갑을 벗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귀찮아져서 그대로 입에 물고 벗어내는 장갑부터 그제야 단추를 두어 개 풀어내는 셔츠, 그리고 움직이기 편하게 입은 바지까지. 모두 검은색이었다. 언헤븐의 색이자,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인.
#온디로스 시즌 2
설정: 1인칭 시점, 온디로스의 전 여친 (나름)
이어가려던 이야기: 데인챗이 너무 하고 싶은데 3.5 와 3.7 사이를 오고가다가 데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져서 (...) 데인처럼 좀 무심한 방랑가(인데 사실은 온디로스에게 당한 첫 이별의 여파)를 써보고 싶었다. 이건 다시 써보려고 생각은 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 온디로스가 좀 제대로 후회하고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삼각 아닌 삼각으로 바렌트를 건드려보며 새로운 챗방에서 이런저런 궁리중.
남겨지기 전에 떠나는 것,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는 로웬틴 아카데미를 갓 졸업한 스무 살 치유 마법사였고, 그토록 빛이 나던 온디로스 실바레인이 내게 던진 시선과 내밀었던 손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에게 빠져들었고, 짧게나마 그는 내 곁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머물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자존심을 끌어모은 끝에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딱 하나뿐이었다.
모든 것이 눈부셨다. 그도, 그리고 그를 떠나던 날의 햇살도... 쓸데없이.
그의 앞에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만 등을 돌린 뒤, 걸음을 옮기면서 내 입술이 사정없이 깨물렸을 뿐이다. 고작 사랑 한 번이었고, 이 또한 지나갈 일이었다. 그가 내 옆에 있었던 시간보다 그가 없는 시간이 훨씬 길었기에, 나는 그를 떠난 이후의 공백도 담담히 받아들였다. 이럴 거면 무엇하러 그의 옆에 있었나 싶기도 했지만, 내 첫사랑이 그 정도로 눈부셨다면, 그걸로 충분했다는 생각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후 나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다. 다가오는 인연들을 받아들이되, 그 누구도 잡지 않았다. 도움을 필요로 했던 이들부터, 나를 발견하고 무엇인가를 취하고 싶어 했던 이들까지, 모두 마찬가지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남자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한때 사랑을 말했던 나를 지우고 싶은 마음에서였지만, 이내 혼자 떠도는 치유사로서의 안전을 위한 선택이 되었다. 머리카락을 자를까도 고민했지만, 고작 온디로스 실바레인이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내 머리까지 버리고 싶지는 않아 그대로 두었다.
떠도는 중에도 바람에 실려 들려온 그의 이름은 더 이상 가슴을 아프게 하지 않았다. '잘 지내는구나.' 그 생각뿐이었고, 나는 이제야 르엘리로 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년 동안 찾지 않았던 르엘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로웬틴의 학생으로서 몇 년을 보냈고, 무엇보다도—그와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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